베테랑 이종범과 ‘sacrifice(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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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이종범과 ‘sacrifice(희생)’



[동아닷컴]

야구팬들에게 이종범(kia)은 ‘신(神)’으로 통한다. ‘엠엘비파크’ 등 야구커뮤니티에서는 야구팬들이 그를 ‘종범신’으로 부르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신’이라는 수식어는 ‘양신’ 양준혁(삼성)과 이종범에게만 허락된다. 화려한 선수생활과 경기장 안팎에서의 모범적인 모습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 것들이 두 선수를 신으로 만들었고, 야구팬들은 망설임 없이 두 선수를 ‘양신’과 ‘종범신’으로 부른다.

1970년생인 이종범은 우리나이로 마흔이다. 전성기 이종범은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타석에서는 위협적인 타자였고, 루상에서는 가장 빠른 주자였다. 또 필드에서는 역동적인 수비로 상대의 숨통을 졸랐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종범은 팀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펼치는 플레이가 팀을 위한 것이었고 희생이었다. 아무도 그의 움직임에 이견을 달 수 없었으며, 팬들은 그의 이름만 환호하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종범의 운동능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종범만이 가능했던 화려했던 플레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매년 개인순위표 맨 윗줄에 있었던 그의 이름도 아래쪽에서 찾는 것이 빨라졌다.

성적이 추락한 이종범은 구단으로부터 은퇴협박까지 받았다. 매년 겨울이면 유니폼을 벗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지만 이종범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마지막으로 꺼낸 ‘희생(sacrifice)’이라는 카드와 함께 다시 일어섰다.

이종범의 최근 플레이를 보면 팀을 위한 희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kia의 수비는 8개구단 중 최하위권. 중견수(이용규), 2루수(김종국), 3루수(이현곤)만 안정된 수비를 보일 뿐 다른 포지션은 공이 가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이용규마저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이 의지할 수 있는 선수는 이종범밖에 없다. 그는 중견수와 우익수를 오가며 수비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젊은 선수들을 밀어내고 3루수로 기용됐다. 지난 시즌에는 1루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바 있으며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의 마지막 포지션인 마운드에 오를 준비도 되어 있다.

타격에서도 이종범을 팀을 위한 배팅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 이종범이 때려낸 12개의 안타 중 6개가 우전안타. 4개는 1루에 주자를 놓고 밀어치기로 만들어낸 안타였으며, 세 차례나 결정적인 찬스인 무사 혹은 1사 1-3루로 연결됐다.

이종범은 다른 면에서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시즌 초반 kia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독기와 집중력이 없었다. 이런 선수들의 플레이가 아쉬웠는지 이종범은 15일 열린 롯데전에서 삼진을 당한 뒤 심판 판정에 항의를 하고 덕아웃에 들어와 배트를 부러뜨리는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심판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목표의식이 없는 후배들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야구를 향한 열정과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백전노장의 희생이 묻어나는 장면이었다.

시즌 전 말한 “목표는 없다.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라는 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종범은 아직도 kia에서 가장 열정적인 선수이며 승리와 우승에 목말라 있는 듯하다.

본인의 욕심대로 오랫동안 현역생활을 이어가 아들 정후와 필드에서 함께 뛰는 모습을 봤으면 한다. 아직도 많은 야구팬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처럼…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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