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5.05 이종범의 4할, 누가 저지했나
  2. 2009.04.20 베테랑 이종범과 ‘sacrifice(희생)’
  3. 2009.04.20 이종범 영상
  4. 2009.04.20 이종범 내 마음속의 영원한 레전드
  5. 2008.05.12 목동야구장(기아Vs우리) (2)

이종범의 4할, 누가 저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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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최훈

1994년. 메이저리그는 샐러리캡 도입 문제를 놓고 사무국과 선수노조(선수대표 톰 글래빈)가 팽팽히 맞섰다. 양측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45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시즌이 중단됐다. 행동은 같이 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던 두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연속 경기 출장을 이어가고 있던 칼 립켄 주니어와 4할 타율에 도전장을 던진 토니 그윈(당시 34세)이었다.

그윈의 타율은 .394였다. 게다가 중단 직전 10경기에서는 .475의 맹타를 휘둘러 오히려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파업과 함께 그윈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그윈은 1941년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 4할(.406) 이후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1994년. 일본에서는 새로운 기록이 탄생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2년차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당시 20세)가 210안타를 날려 일본 프로야구 탄생 60년 만에 최초로 200안타를 달성한 것. .385의 퍼시픽리그 역대 최고 타율 기록도 세운 이치로는 미국에 진출하기 전까지 7년 연속 타격왕을 거머쥐었고, 미국에서의 첫 시즌에서도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94년. 4할과 200안타에 도전한 천재 타자는 한국에도 있었다. 해태 타이거스의 2년차 유격수 이종범(당시 만 23세)이었다.

이종범 : .393 .452 .581 / 125경기 196안타 2루타27, 19홈런 77타점 84도루
그윈  : .394 .454 .568 / 110경기 165안타 2루타35, 12홈런 64타점 5도루
이치로 : .385 .445 .513 / 130경기 210안타 2루타41, 13홈런 54타점 29도루

이종범의 데뷔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1993년 이종범은 133안타로 박정태가 1991년에 세운 131안타의 신인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했고, 1985년 이순철이 세운 31개의 신인 최다도루 기록은 무려 73개로 늘려놨다. 또한 1986년 김정수에 이어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역대 2번째 신인이 됐다. 하지만 이는 상상을 넘어서는 2년차 시즌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1994년 출발은 평범했다(4월 타율 .324). 하지만 이종범은 5월에 .394, 6월에 .400을 기록했고 .390으로 전반기를 끝냈다. 65번째 경기에서 100안타를 돌파함으로써 백인천이 1982년 원년에 기록한 69경기 기록도 경신했다. 78경기에서 기록한 122안타는 정확히 200안타 페이스였다. 전반기 이종범은 팀 도루의 절반을 혼자 해냈으며, 1번타자임에도 팀 홈런의 25%와 타점의 17%를 책임졌다. 17홈런-57도루를 기록, 역대 최초의 30-30클럽 가입도 가능해 보였다.

8월21일 광주 쌍방울전에서 이종범은 4타수4안타를 기록, 하룻만에 8리를 끌어올렸고 .400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종범은 이후 22경기에서 .324에 그쳤고, 결국 .393로 시즌을 마감했다. 또한 마지막 6경기에서 12안타를 몰아쳤지만, 끝내 4개 차이로 200안타 달성에 실패했다.

시즌이 끝난 후 이종범이 밝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400에 올라선 쌍방울전 직후였다. 이종범은 갑자기 배탈에 시달렸고, 좋았던 기세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종범은 이후 3경기에서 13타수1안타에 그치며 순식간에 1푼을 까먹었다.

시즌 막판에 페이스 조절을 했다면 이종범은 4할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열한 4강 싸움을 했던 해태는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이라는 이종범을 쉬게 할 여력이 없었다. 이종범 역시 기록을 위해 쉴 생각이 없었다. 또한 이종범은 '2번째 4할'보다는 '첫번째 200안타'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이종범이 포지션이 유격수였다는 것이다. 165안타 이상 13명 중 미들 인필더는 이종범이 유일하다. 1루수와 외야수를 제외한 선수도 이종범을 제외하면 3루수 김한수(1999년 169개 10위)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다안타 20위 중 미들 인필더는 2루수 로저스 혼스비뿐이며, 혼스비와 3루수 웨이드 보그스를 제외한 18개 기록이 1루수 또는 외야수에게서 나왔다(한편 KBO는 상위 19개 중 5개, ML은 20개 중 4개가 우타자에게서 나왔다).

또한 이종범은 1루에 나가면 끊임없이 도루를 시도했고 이는 엄청난 체력 소모로 이어졌다. 1994년 이종범을 제외하고 최다안타 상위 18명 중 4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2003년 이종범(50개)뿐이다. ML에서도 30위 기록 중 도루를 60개 이상 성공시킨 선수는 1911년 타이 콥(83개)이 유일하다. 시즌이 끝날 무렵 이종범의 체중은 정상 체중에서 6kg이나 모자란 66kg에 불과했다.

지친 이종범은 후반기에 단 2개의 홈런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박재홍보다 2년 먼저 최초의 30-30을 달성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으며, 홈런 1개 차이로 김성한 이호성 장종훈 이정훈 송구홍 이순철에 이은 역대 7번째 20-20도 놓쳤다.

이종범은 두산전에서 .457, 쌍방울전에서 .451, 삼성전에서 .429의 맹타를 휘둘렀다. 롯데전(.387)과 한화전(.360) 태평양전(.360)에서도 3할6푼 이상을 기록했다. 이들 6팀을 상대한 성적을 합치면 .406로 테드 윌리엄스의 1941년 마지막 4할과 같았다. 하지만 단 한 팀이 이종범의 소나기 안타를 피했는데, 그 해 정규시즌 81승과 한국시리즈 4연승을 거둔 최강 팀 LG였다. 이종범은 LG전에서 .315에 그쳤고, 결국 이것이 4할과 200안타 달성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투수 중에서는 누가 이종범의 앞길을 막아섰을까. 이종범은 그해 평균자책점 5걸 중 정민철(14승10패 2.15) 박충식(14승8패 2.35) 김상진(14승10패 2.37) 이상훈(18승8패 2.47)을 상대로 도합 .463(41타수19안타)을 기록했다. 하지만 4위 김태원(16승5패 2.41)에게 .222(9타수2안타)에 그쳤다. 가장 큰 실패를 맛본 대결은 세이브포인트 1위(44) 정명원(7타수1안타), 그리고 송진우(6타수 무안타)였다. 시즌 성적에서 두 선수의 대결을 제외하면 .401가 된다.

1995년, 이종범은 1994년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찾아온 단축시즌 때문이었다. 1995년은 단기사병 제도의 마지막 해였고, 이종범도 많은 선수들과 함께 입대했다. 이에 바람은 그가 퇴근한 후 광주에만 불었다.

기록 제공 - 스포츠투아이(주)

기사제공 :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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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이종범과 ‘sacrifice(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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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이종범과 ‘sacrifice(희생)’



[동아닷컴]

야구팬들에게 이종범(kia)은 ‘신(神)’으로 통한다. ‘엠엘비파크’ 등 야구커뮤니티에서는 야구팬들이 그를 ‘종범신’으로 부르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신’이라는 수식어는 ‘양신’ 양준혁(삼성)과 이종범에게만 허락된다. 화려한 선수생활과 경기장 안팎에서의 모범적인 모습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 것들이 두 선수를 신으로 만들었고, 야구팬들은 망설임 없이 두 선수를 ‘양신’과 ‘종범신’으로 부른다.

1970년생인 이종범은 우리나이로 마흔이다. 전성기 이종범은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타석에서는 위협적인 타자였고, 루상에서는 가장 빠른 주자였다. 또 필드에서는 역동적인 수비로 상대의 숨통을 졸랐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종범은 팀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펼치는 플레이가 팀을 위한 것이었고 희생이었다. 아무도 그의 움직임에 이견을 달 수 없었으며, 팬들은 그의 이름만 환호하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종범의 운동능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종범만이 가능했던 화려했던 플레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매년 개인순위표 맨 윗줄에 있었던 그의 이름도 아래쪽에서 찾는 것이 빨라졌다.

성적이 추락한 이종범은 구단으로부터 은퇴협박까지 받았다. 매년 겨울이면 유니폼을 벗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지만 이종범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마지막으로 꺼낸 ‘희생(sacrifice)’이라는 카드와 함께 다시 일어섰다.

이종범의 최근 플레이를 보면 팀을 위한 희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kia의 수비는 8개구단 중 최하위권. 중견수(이용규), 2루수(김종국), 3루수(이현곤)만 안정된 수비를 보일 뿐 다른 포지션은 공이 가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이용규마저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이 의지할 수 있는 선수는 이종범밖에 없다. 그는 중견수와 우익수를 오가며 수비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젊은 선수들을 밀어내고 3루수로 기용됐다. 지난 시즌에는 1루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바 있으며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의 마지막 포지션인 마운드에 오를 준비도 되어 있다.

타격에서도 이종범을 팀을 위한 배팅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 이종범이 때려낸 12개의 안타 중 6개가 우전안타. 4개는 1루에 주자를 놓고 밀어치기로 만들어낸 안타였으며, 세 차례나 결정적인 찬스인 무사 혹은 1사 1-3루로 연결됐다.

이종범은 다른 면에서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시즌 초반 kia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독기와 집중력이 없었다. 이런 선수들의 플레이가 아쉬웠는지 이종범은 15일 열린 롯데전에서 삼진을 당한 뒤 심판 판정에 항의를 하고 덕아웃에 들어와 배트를 부러뜨리는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심판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목표의식이 없는 후배들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야구를 향한 열정과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백전노장의 희생이 묻어나는 장면이었다.

시즌 전 말한 “목표는 없다.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라는 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종범은 아직도 kia에서 가장 열정적인 선수이며 승리와 우승에 목말라 있는 듯하다.

본인의 욕심대로 오랫동안 현역생활을 이어가 아들 정후와 필드에서 함께 뛰는 모습을 봤으면 한다. 아직도 많은 야구팬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처럼…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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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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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내 마음속의 영원한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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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타어거즈의 레전드 이종범. 그는 올해도 구단으로부터 은퇴를 종용받고 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리고 찌라시 같은 스포츠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들이지만,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그가 누구인가? 다른건 몰라도 내 마음속에서만은 한국 프로야구의 영원한 레전드이고 유일한 레전드이다.

바람의 아들? 5 Tool Player?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의 플레이 하나 하나가 나에게는 기쁨이었고, 감동이었으며, 행복이었다.

그런 그가 올해도 어김없이 은퇴를 종용 받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팀 리빌딩 때문에? 고액연봉이라서? 그 어느것 하나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이종범은 전성기 시절 아니 일본 진출전에 보여줬던 그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보기 위해 단지 그가 그라운드에서 때리고, 달리고, 던지고, 웃고, 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 그들이 지금 이종범에게 전성기 시절의 그 플레이를 보기를 원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타이거즈 팬에게 있어 그는 하나의 신화이자 우상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선수이다.



선동렬? 물론 그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레전드는 오직 이종범 뿐이다. 그가 가진 기록들은 참 다양하다. 1회 선두타자 홈런(이건 아마 영원히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 생각한다), 한시즌 최다 도루, 백인천을 제외한 한시즌 최다 타율, 한시즌 최다 안타 등등등 하지만 이 기록이 이종범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런 그가 돈이 아쉬워서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실력이 너무 안되는데도 자신의 고집만으로 은퇴를 결심하지 않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올시즌 이종범은 그의 연봉을 대폭 삭감(5억 -> 2억)하였다. 물론 고액 연봉임에는 틀림없지만, 올시즌 그는 연봉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1루수? 오케이! 외야수? 좋지!

포수 이종범

기억하는가? 96년 포수 이종범을!


현역(아니 은퇴한 모든 선수를 따져봐도)선수 중에서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정규 리그에서 소화해낸 선수는 단 한명 바로 이종범 뿐이다. 팀이 원하므로. 그는 외야수로 전업을 했으며, 팀이 원하므로 1루수비도 바로 OK 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연봉 이상의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이종범 통산기록

이종범 선수의 통산 기록 (출처: KBO 홈페이지)




제발 이종범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그는 충분히 그의 말에 책임을 질것이고, 그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줄 것이다. 이제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아무리 붙잡는다 하더라도 그가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이종범

나의 영원한 레전드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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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야구장(기아Vs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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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몇년만인가...오늘은 눈뜨자마자 계획도없이 무작정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아타이거즈 탈꼴지와 함께 계속된 연승 때문이었을까...오랜만에 보는 만원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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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해태시절. 내가 야구장을 가면 그날은 꼭 승리한다는 말도안되던 공식이 또 한번 빛을 발했고. 이걸로 5연승!!! 쪼아~이데로 쭉~가는거야~~!!!!! 가을잔치와 V10까지~!!!!!
야구장에서만 느낄수 있는 그 최고의 희열을 그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다시 찾게해줘서 고맙다~!! 올해는 자주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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